2년 전쯤인가. 나눔의 집을 찾았을 때 이용수 할머님께서 마침 그곳에 계셨다.
허겁지겁 거실로 들어가 인사를 드렸는데
행사를 마치고 막 귀국하셨다던 할머니께서 내게 고맙다는 말만 연신 하셨다.
오히려 그 연세에 독일을 다녀오신 당신의 수고에 내가 몇 배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렸어야 했는데도 말이다.
같은 해 수요집회에서는 윤미향 전 이사장을 만났다.
무대 밑에서 서로 눈이 마주쳤고 잠깐 말을 주고받게 됐는데,
윤 이사장도 고맙다고 했다. 찾아와줘서 고맙고 관심 가져줘서 고맙다.
내가 더 감사드린다는 말을 드렸어야 했었지만 그때도 그러질 못했다.
그리고 시간이 흘러 작년 겨울, 김복동 할머니 장례식에서 두 분을 한꺼번에 뵐 수 있었다.
준비된 추모식에서 두 분은 같은 테이블에 앉아 계셨고 나는 찾아가 고개를 숙였다.
윤 이사장은 이용수 할머님께 우리를 인사 시켰다. 할머니께서도 알지 알지 하시며 말을 이어가셨는데
대화가 오가던 순간 그 둘의 손이 포개어져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.
근데 잠시 꿈을 꾸었나 싶다.
그때로부터 조금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둘은 서로에게 등을 돌렸고
심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기사들이 최근 몇 주간 쏟아진다.
사람들도 나뉘었다. 털고 가야 하는 일이고 의원이 낳은 정파적 소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.
다만 같은 곳을 바라보던 분들이 서로를 힐난하고 삿대질하는 모습은 꽤나 혼란스럽다.
'이용수 대 정의연' 프레임에 갇혀 버린 이 참극이
내게도 많은 생각거리를 주었지만 나는 실은 결론도 내지 못했다.
어쩌면 내고 싶지 않다는 게 정확할지도 모르겠다.
또 그게 중요한가 싶고 그렇다.
최근 한 친구가 카톡으로 물었다. "궁금해서 그러는데 너는 윤미향이야 할머니야?"
왜 질문이 그래? 이유모를 욱이 잠시 차올랐다.
그래도 속으로 삼켜내며 답을 했다. 본질 어쭈구, 균형 어쭈구, 미래가 어쭈구.
지금은 내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.
한동안 아쉬움이었던, 그저 두 분을 다시 뵈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야 겠다는 다짐은
후대로서 아들로서 책임을 외면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. (2020. 05. 29.)